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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발명가들 ② 플래시 메모리의 아버지 마스오카 후지오 박사

엄정한
2026-08-09
조회수 128

마스오카 후지오 박사와 플래시 메모리의 탄생


여러분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에는 사진 수만 장, 영상 수백 편이 들어 있습니다.

전원을 꺼도 지워지지 않고,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일상은,

40여 년 전 도시바의 한 연구원이 회사의 허락 없이 밤과 주말을 바쳐 만든 발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큐리어스특허법률사무소의 엄정한 변리사입니다.


지난 글에서 강대원 박사의 MOSFET 특허(US 3,102,230)를 다뤘습니다. 강 박사가 1967년 시몬 스제와 함께 발명한 '플로팅 게이트'가 훗날 플래시 메모리의 씨앗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글을 맺었는데요. 오늘은 그 씨앗을 거대한 나무로 키워낸 사람,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 그늘에서 오래 잊혀졌던 발명가의 이야기입니다.


군마현 다카사키의 수학 소년


마스오카 후지오(舛岡富士雄) 박사는 1943년 5월 8일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에서 태어났습니다. 열 살 무렵 어머니가 수학 공부를 독려하며 가정교사를 붙여주었고, 열두 살에 이미 또래 수준을 훌쩍 넘는 수학 실력을 갖췄다고 전해집니다. 고등학교 시절 물리·전자 동아리에서 집적회로에 매료된 그는, "기술의 진보는 이론적 작업을 통해서만 달성된다"는 신념으로 이론 공부에 파고들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 시기에 경제학과 법학까지 깊이 공부했다고 합니다. 훗날 자신의 발명을 둘러싼 긴 싸움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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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호쿠대학 전자공학과에서 1966년 학사, 1968년 석사, 1971년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지도교수는 일본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시자와 준이치 교수였습니다. 그리고 1971년 4월, 도쿄시바우라전기 — 지금의 도시바 — 연구개발센터에 입사합니다.



D램의 시대, 그리고 D램의 한계


입사 3개월 차, 상사였던 다케이시 요시유키 박사가 그에게 과제를 하나 던집니다. 몇 달 전 인텔이 발표한 자외선 소거형 EPROM을 연구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스오카는 두 달 만에 새로운 구조를 찾아냅니다. 이중 폴리실리콘 구조에 플로팅 게이트를 결합한 SAMOS(Stacked-gate Avalanche-injection MOS) 메모리. 1972년, 입사 이듬해에 낸 그의 첫 특허였습니다.


이후 그는 이중 폴리실리콘 구조의 D램 셀을 개발했고, 1977년 반도체 사업부로 옮겨 1Mbit D램 개발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일본 반도체는 D램으로 세계를 제패하던 시절이었고, 도시바는 그 선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마스오카의 마음은 D램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D램은 전원을 끄면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커패시터에 저장된 전하가 새어 나가기 때문에 수십 밀리초마다 리프레시(재충전)를 반복해야 하고, 전원이 끊기는 순간 데이터는 소멸합니다. 그래서 당시 컴퓨터는 데이터를 남기기 위해 크고, 느리고, 충격에 약한 자기 하드디스크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마스오카가 꿈꾼 것은 전원이 꺼져도 기억하는 반도체, 그래서 언젠가 하드디스크 자체를 대체할 메모리였습니다. 당시 업계의 통념은 정반대였습니다. "비휘발성 반도체 메모리는 자기디스크를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용량당 단가에서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발상의 전환 — "한 번에 지운다"


물론 당시에도 비휘발성 메모리는 있었습니다. 문제는 지우는 방식이었습니다. EPROM은 싸고 집적도가 높았지만 지우려면 칩을 꺼내 자외선을 20분씩 쬐어야 했습니다. 전기로 지울 수 있는 EEPROM은 편리했지만, 바이트 단위로 지우기 위해 셀마다 선택 트랜지스터가 하나씩 더 필요했습니다. 트랜지스터 2개짜리 셀. 즉, 비싸고 커서 대용량이 불가능했습니다.


마스오카의 통찰은 단순하고 과격했습니다.


"한 비트씩 지우려니까 복잡한 것이다. 통째로, 한 번에 지우면 된다."

블록 단위 일괄 소거를 전제로 회로를 다시 설계하면 셀당 트랜지스터를 1개로 줄일 수 있고, 그러면 EPROM급 집적도와 EEPROM급 전기 소거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집적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비트당 단가는 무너져 내립니다. 언젠가 무어의 법칙을 타고 하드디스크를 추월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문제는 회사였습니다. 도시바가 그에게 원한 것은 D램이었지, 이런 '이단적인' 메모리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품질보증 부서에 있던 마스오카는 회사의 허가 없이, 업무 외 시간인 밤과 주말을 이용해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했고, 동료 이즈카 히사카즈와 함께 1980년 겨울 일본 특허청에 기초출원을 쏟아냅니다.


이름은 아직 없었습니다. '플래시'라는 이름은 동료 아리이즈미 쇼지가 붙였습니다. 데이터가 한순간에 일괄 소거되는 모습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것 같다는 이유였습니다. 기술의 본질(일괄 소거)을 이만큼 정확하게 담은 네이밍도 드뭅니다. 상표를 다루는 변리사로서, 저는 이 작명 하나가 이 기술의 확산에 기여한 몫도 결코 작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원천특허의 계보 — 출원번호로 읽는 역사

변리사의 눈으로 특허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1980년 12월의 집중 출원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일본 기초출원 (1980년 겨울):


일본 기초출원출원일공개번호

特願昭55-172915 / 172916 / 1729171980. 12. 8.特開昭57-98190 / 98191 / 98192

特願昭55-180941 / 180952 / 1809531980. 12. 20.特開昭57-104262 / 104264 / 105890

特願昭56-119780 / 119781 (보완)1981. 7. 30.特開昭58-19796 / 19797


불과 12일 간격으로 두 차례에 걸쳐, 소거게이트를 갖는 1트랜지스터 셀의 구조·제조방법·구동회로를 각각 쪼개어 출원한 것입니다. 밤과 주말에 만든 발명치고는 놀랍도록 체계적인 출원 설계입니다.


미국 출원 (1981. 11. 13. — 우선권 주장 통합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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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특허등록일발명자 / 대상

US 4,437,1721984. 3. 13.마스오카 단독 — 소거게이트 구비 메모리 소자와 구동회로

US 4,531,2031985. 7. 23.마스오카·이즈카 공동 — 셀 구조 및 제조방법

일본에서 8건으로 나눠 출원한 내용을 미국에서는 2건으로 묶어 냈습니다. 흥미롭게도 US 4,531,203의 심사에서 인용된 선행문헌은 인텔의 EPROM 특허(US 4,203,158)였습니다. 인텔의 기술 위에서 인텔을 넘어선 셈입니다.


이후의 이정표: 1984년 IEDM(샌프란시스코)에서 256Kbit 플래시 EEPROM을 발표합니다. 비트당 셀 면적이 기존 EEPROM의 4분의 1 이하였습니다. 미국 반도체 업계가 즉각 위협을 감지했고, 인텔을 포함한 주요 기업들이 샘플을 요청했습니다. 1987년 IEDM에서는 NAND형 플래시를 발표했고, 같은 해 도시바가 세계 최초로 플래시 메모리를 상용화합니다. NAND 원천특허는 1987년 일본 출원을 기초로 한 US 5,245,566(1993. 9. 14. 등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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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시바 재직 중 등록특허 189건, 논문 79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세계 최초의 GAA(Gate-All-Around) 트랜지스터까지 시연합니다. 오늘날 3나노 공정의 최전선에 있는 바로 그 구조입니다. 한 사람이 메모리와 로직 양쪽의 미래를 모두 앞서 그려놓은 셈입니다.


인텔은 어떻게 플래시를 가져갔나


여기서 이야기는 익숙하면서도 쓰라린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1984년 IEDM에서 마스오카의 발표를 본 인텔은 즉시 움직였습니다. 인텔은 자사의 주력이던 EPROM 공정을 기반으로 ETOX(EPROM Tunnel Oxide)라는 자체 NOR 플래시 기술을 개발했고, 1988년 최초의 상용 NOR 플래시 칩을 내놓습니다. 기존 EPROM과 핀 호환되는 '플러그 앤 플레이' 전략 덕분에 ETOX는 빠르게 업계 표준이 되었습니다.


인텔 내부에서도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다고 합니다. 경영진은 바이트 단위로 지워지는 완전한 EEPROM을 원했고, 블록 단위로만 지워지는 플래시는 '타협의 산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방향이 정해지자 인텔은 20년간 10세대의 ETOX 기술을 갈아 넣었고, 휴대폰의 코드 저장용 메모리로 채택되면서 플래시는 인텔의 10억 달러 사업이 됩니다.


한편 NAND 진영에서는 도시바가 인텔·삼성전자 등에 기술 라이선스를 제공했고, 1991년 샌디스크가 IBM ThinkPad용으로 최초의 플래시 SSD를 상용화합니다. 1990년대 중반 디지털 자동응답기를 시작으로, 디지털카메라의 '디지털 필름'(마스오카 자신이 도시바 가전부문을 설득할 때 썼던 바로 그 비전입니다), SD카드와 USB 메모리, MP3 플레이어와 iPod, 그리고 스마트폰과 SSD, 데이터센터까지. 지난 편에서 소개한 "1960~2018년 사이 제조된 트랜지스터 1.3×10²²개"의 다수가 바로 이 NAND 플래시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NAND 시장의 정상에 오른 것은, 도시바로부터 초기 라이선스를 받았던 한국 기업들이었습니다.


발명자에게 남은 것 — 직무발명 보상의 세계사적 사건


그렇다면 마스오카 박사 본인은 무엇을 받았을까요.


도시바가 그에게 지급한 발명 관련 사례금은 고작 100만 엔이었습니다. 회사는 승진으로 보답했다고 여겼지만, 정작 그가 원했던 연구 환경과 인정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도시바 홍보부서가 해외 언론에 "플래시 메모리는 인텔이 발명했다"고 답한 일화는, 2002년 포브스가 그를 다룬 기사 제목 — "Unsung Hero(노래되지 않은 영웅)" — 그대로였습니다.


1994년 그는 도시바를 떠나 모교 도호쿠대학 교수로 부임했고, 2004년 3월 도쿄지방재판소에 도시바를 상대로 직무발명 보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합니다. 청구액은 발명 대가의 일부로서 10억 엔. 마침 일본에서는 청색 LED의 나카무라 슈지 교수가 200억 엔 보상 판결(1심)을 받아낸 직후여서, 이 소송은 일본 열도의 '발명 대가 소송' 물결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2006년 7월, 양측은 화해합니다. 보상금은 8,700만 엔. 도시바가 그의 특허로 2003년까지 받은 실시료만 약 100억 엔, 관련 수익은 약 200억 엔으로 알려진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숫자입니다만, 이 사건은 나카무라 사건과 함께 일본 특허법 제35조(직무발명) 개정 논의를 촉발했고, 바다 건너 우리 발명진흥법상 직무발명 보상 실무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저는 스타트업 대표님들께 직무발명 보상규정을 회사 설립 초기에 정비하시라고 늘 말씀드립니다. 그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바로 마스오카 박사입니다. 위대한 발명이 나온 뒤에 보상을 설계하면 늦습니다. 발명이 나오기 전에, 제도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변리사로서 남는 세 가지 생각


첫째, 원천특허는 '구조의 전환'에서 나옵니다. 마스오카의 발명은 새로운 물질도, 새로운 물리현상도 아니었습니다. 강대원·스제의 플로팅 게이트라는 기존 원리 위에서 "지우는 단위를 바꾼다"는 아키텍처 전환 하나로 원천특허가 성립했습니다. 청구항의 힘은 종종 소자가 아니라 '방식'에 있습니다.


둘째, 발명의 가치는 발명자가 아니라 상용화한 자가 가져가기 쉽습니다. 발표(1984 IEDM)로부터 상용화(인텔 1988)까지 4년. 그 4년 동안 특허 포트폴리오와 사업 전략을 어떻게 짜느냐가 20년의 시장을 갈랐습니다. 기술을 공개하기 전에 출원을, 출원 후에는 사업 설계를. 순서가 전부입니다.


셋째, 직무발명 보상은 비용이 아니라 보험입니다. 100만 엔을 아낀 회사는 8,700만 엔의 화해금, 그리고 "발명자를 잊은 회사"라는 이야기를 역사에 남겼습니다. 발명자를 존중하는 제도는 결국 회사를 지키는 제도입니다.


다음 글 예고 — 세상을 바꾼 발명가들 ③


강대원 박사의 평면형 MOSFET은 미세화의 벽에 부딪히고, 그 벽을 넘어선 것이 3차원 구조의 핀펫(FinFET)이었습니다. 그 원천특허의 주인공은 한국의 이종호 교수. 다음 글에서는 KAIST·원광대 공동연구로 탄생한 벌크 핀펫 특허가 어떻게 인텔·삼성·TSMC 모두가 밟고 선 기술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특허를 둘러싼 분쟁과 교훈을 변리사의 시선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큐리어스특허법률사무소 · 엄정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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